법의학 부검실은 어떻게 생겼을까

07 April 2009 5 Comments Category: 의학적 수다


법의학 실습이 어느새 한 주 하고도 이틀째이다. 여유있는 시간일 수록 빠르게 지나가는게 맞긴 맞는 듯하다. 쉬어가는 주간이자 열심히 자율학습도 하는 기간으로 만들려 했는데 어영부영 시간은 잘도 간다.

CSI: Autopsy RoomCSI와 같은 미국 TV 시리즈 때문인지 법의학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선택실습으로 법의학을 한다는 얘기를 들은 친구는 궁금한게 많았던지 질문을 쏟기했다. ‘법의학’이 ‘법+의학’인지 ‘법의+학’인지도 몰랐던 나에 비하면 미국드라마(미드)를 많이 본 친구가 한 수 낫기는 했지만 우리나라 법의학의 현실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몸으로 체험하는 내가 낫지 않을까. 

사건이 일어나고 사체 부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미드 때문인지 CSI처럼 멋진 장면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오래전 해부실습을 하면서 우리 학교의 열악한 환경에 이미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멋진 해부실이나 부검실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학교에 따라 깨끗하고 현대식으로 갖춘 곳도 있더라마는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국립대에서 뭘 더 바라랴.

우리나라 부검의 90% 정도는 국림과학수사연구소에서 이루어진다지만 우리 법의학교실에 의뢰되는 부검도 결코 적지 않다. 일년에 250건 이상이라고 하니 매일 부검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의료소송과 관련된 사건인 경우도 있고, 교통사고, 급사, 폭행치사, 자살, 익사 등 정말 다양한 사건이 의뢰된다. 

그럼, 사체 부검이 이루어지는 곳은 어떻게 생겼을까. 앞서 CSI 얘기가 나왔지만, 그 정도로 좋은 시설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법의학으로 유명한 어느 외국 대학에서 수련을 받으신 교수님의 지난 사진을 봐도 CSI 만큼은 아니었다. 물론 우리 학교보다는 훨씬 좋아보였다. 

사진: 경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법의학교실

사진: 경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법의학교실

이곳이 우리 학교 법의학교실의 부검실이다. 한 눈에 보아도 노후한 건물. 지금 학교의 전신이었던 의학교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낡은 건물이지만 학교의 전통을 생각하면 마냥 싫지만은 않다. 자료사진을 보면 이곳에서 수술하던 모습도 보이는데 처음부터 부검실은 아니었나보다.

부검실 안쪽으로 들어오면 사체를 놓고 부검을 하는 대리석 테이블이 있고, 한쪽 벽을 따라 둥글게 계단식 스탠드가 마련되어 있다. 유가족이나 형사, 학생 등 참관인들을 위한 자리이다. 지나치게 가파르다 싶을 만큼 턱이 높은 대신에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래서 높은 뒤쪽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머리 속에 부검실 내부 모습이 그려지는가. 

사진: 경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법의학교실

사진: 경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법의학교실

사진의 가운데가 사체가 놓인 테이블이며 주위에 부검의, 어시스트,  형사 등 관계자들이 서 있고, 사진 아래쪽으로는 참관하는 학생들의 머리가 보인다. 북적북적한 모습이지만 대부분의 부검은 부검의와 어시스트, 형사분 몇몇으로 한산한 가운데 조용하게 이루어진다. 관심있는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와서 볼 수 있지만 수업 등으로 인해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고, 시간이 있다고 한들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을 즐기고 싶지, 부패한 사체를 가까이하고 싶은 학생이 그리 많지는 않다. 

가끔씩 유가족들이 참관을 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은 부검실 밖에서 기다리지만 가족의 죽음이 너무도 억울하고 납득이 되지 않아서 참관을 원하는 분도 계신다. 하지만 부검 과정을 끝까지 지켜보는 유가족은 그리 많지 않다. 

외형을 면밀히 살피고 사진을 찍은 후 목부터 배 아래까지 절개를 시작하면, 참관하는 학생들은 그때부터 한결 더 또렷해지지만 유가족의 눈은 눈물로 흥건해진다. 이어 내부 장기가 하나씩 잘려나오는 것을 참다 못해 이제 그만하면 안되겠냐고 만류하는 분도 계시다. 잘 견디다가도 마지막에 뇌를 적출하기 위해 머리를 절개하기 시작하면 끝내 자리를 지키지 못하기도 한다. 

죽은 몸에 또 한번 칼을 댄다는 것, 두 번의 죽음을 안겨준다는 것도 물론 힘들겠지만, 그 보다도 보고 있으면 내 피붙이에게 혹은 내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 그대로 살을 발라내는 아픔을 겪게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겠는가. 이것은 유가족만이 이해할 수 있는 아픔일 것이다.   

위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부검실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고, 수익을 낼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국립대를 중심으로 겨우겨우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저마다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인력과 시설, 교육과 수련에 대한 부담을 지고 싶어하지 않으니 더 많은 대학에 법의학교실이 생기기가 쉽진 않을 것 같다. 

낙후된 시설과 부족한 인력, 그에 비해 과다한 업무로 인해 ‘자긍심’ 그 하나마저 없으면 일 할 사람이 없다는 법의학. 사람 살리는 병원과 의료제도에 힘쓰는 것은 당연하지만, 잘못된 법의학적 지식이나 부검, 잘못된 사망진단서로 인한 고통과 경제적 손실을 생각하면 이 쪽도 절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우리나라 검시제도의 문제점, 법의학 교육의 필요성과 현실 등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것은 분명한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보강할지 지켜볼 일이다. 

부검실은 비록 생사가 갈리는 수술실은 아니지만,  한 인간의 죽음 뒤에 숨겨진 진실과 의미를 찾아내는 곳이다.

관련사이트
- 경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법의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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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Respon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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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을 참 잘 쓰시네요.
    실크를 몸에 두른듯 한 느낌으로
    잘 읽고 갑니다.

    박승진 8 April 2009 at 1:59 am Permalink
  2. 그냥 모르고 봤으면 무섭다고 생각했을텐데 설명과 같이 보니 여러가지 생각이 드네요.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솔이아빠 8 April 2009 at 8:15 am Permalink
  3.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로시츠키 8 April 2009 at 9:41 am Permalink
  4. @박승진, 미천한 글에 과한 칭찬이라 민망합니다. 하하. 블로그 주소를 남기셨으면 찾아뵐텐데 아쉽네요.
    @솔이아빠, 잘 지내시죠? 많이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 법의학이 갈 길은 멀기만 하답니다.
    @로시츠키, 재밌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LUV™ 8 April 2009 at 6:02 pm Permalink
  5. 제 친구 역시 법의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의대를 들어갔는데, ^-^ 저 역시 경북대학교 의대에 지원했지만 아깝게 떨어졌습니다…ㅠ

    챠오 29 May 2009 at 11:26 pm Perma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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