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난 회상 그리고 공연문화

21 June 2009 2 Comments Category: 생각의 소리


시간을 약속한 사람과 통신이 두절되어 한참을 망설였다. 입장은 시작되고 언제 도착 할런지는 알 수 없고 이런 건 답답하다. 공연을 10여분 남기고 간신히 연결이 되었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산에 서식하는 자연인으로 살자면,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적절한 시간과 약간의 금전적인 여유로 만들어진 우연. 놓치기 싫었다.



공연은 이제 수분여를 남기고 있다. 주변은 막이 오르길 기다리는 관객들로 시끌벅적하다. 모두들 약간 들뜬 음성이다. 귀중한 일탈의 시간 속에서, 열연을 할 배우들의 몸짓으로 희노애락을 전이 받을 기대 앞에 어느 정도의 흥분은 오히려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아아, 이 저녁 나는 모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흔쾌하다.

마치 어린이 동화를 보는 듯 한 느낌으로 마음 놓고 웃다가 갑작스런 비극의 공격을 받았다. 하마터면 울 뻔했다. 허를 찔린 것이다. 절대로 사랑할 수 없는 이를 사랑하는 일. 오로지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까지를 담보로 한 사랑을 하다가, 결국 사회적으로 납득이 되는 타인에게 사랑을 양보하는 행위. 이 연극은 그런 현실적인 구성으로 하여 애초부터 철저한 비극을 잉태하고 있다. 현실에서의 사랑이란 대개 비극이고 조건이고 배덕에 가깝다.

그러니까 이 연극은 이미 죽어버린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현실에서, 이 각박하고 극악한 세상에서 누가 그렇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아낌없이 주기만 할 것인가? 문학과 예술은 늘 사랑의 이상향을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사랑해 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착각인가를 곧 깨닫게 된다. 진실하게 사랑할수록 더 빠르고 뼈저리게 깨닫는다. 이런 종류의 예술적인 감동을 강요받게 된다면 곧 초현실적인 과거의 회상으로 입맛이 씁쓸해 질 것이다.

마침내 진실의 거울이 백설공주를 제일 사랑했던 사람이 난장이 반달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샤-커튼을 이용하여 안개 꽃밭에 영원히 잠들어 있던 반달이를 마법 같은 기법으로 연출한다. 이미 죽어버린 그가 자신의 사랑을 백설공주에게 알리는 아름다운 춤을 출 때, 객석 여기저기에서는 감동의, 또는 아쉬운 사랑의 슬픔의 눈물을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맙소사! 이미 석화 되어버린지 오래된 가슴을 지닌 나조차도 안구에 습기가 어렸다.

이제 진실을 알게 된 백설공주의 비탄은 그녀의 일상적인 행복이 지닌 어두운 그림자다. 그것은 오로지 그녀의 몫이다. 후회는 없겠지. 누가 백마 탄 왕자를 버리고 가난하고 볼품없는 난장이의 순정을 선택할 것인가?

여하튼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하며 사람을 웃기고 울리는 연극이었다. 간단한 소품과 난장이들의 동작만으로 모든 장면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연출 기법도 놀라웠다. 7명이 하는 연극이라서 난장이들의 숫자가 모자라는 것을 탓하지 말라고 조연출자가 미리 주의를 주었지만, 모자라다니! 오히려 재미와 감동 면에서 필요 충분했다는 느낌이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예쁜 소품으로 치장된 무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모처럼 코에 문화적인 바람을 좀 불어 넣어 주었구나. 이제 또 용돈이 모이는 몇 달 후에나 제한된 사치를 누릴 수 있겠지. 오늘 저녁은 약간의 낭비가 주는 뿌듯함으로 후회는 없다.

한가지, 요즘 똑똑한 젊은 관객들에게 바라는 것은, 공연시작 1초 전까지 웬 할 말들이 그리도 많은지, 시장판 같이 어수선 한 것은 좀 그렇다. 악착 같이 떠든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그랬다. 너무 근엄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한 5분 전쯤 부터는 조용히 공연을 기다리는 성숙된 자세는 어떨까? 수다는 나중에 다른 곳에서 떨어대고.

또 한 가지. 연극 시작 직전에 조연출자가 나와서 핸드폰을 꺼달라고 하자 여기저기에서 핸드폰을 꺼내 끄느라고 수선이다. 놀라운 일이다. 아직도 이렇게나 객석의 문화가 석기시대에 머물러 있다니. 모쪼록 연극과 문화를 사랑하는 관객이 그야말로 극적으로 많아져서 이런 눈치 없는 둔탱이들이 아예 안 와도 연극과 문화예술계가 먹고 살만 해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있다.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백사난 (권혁미)

백사난 (권혁미)

백사난 (권혁미)

백사난 (최인경)

백사난 (최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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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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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 백사난이 대체 뭐지? 언제 일어난 난일까.. 민란? 의적? 이랬는ㄷㅔ..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줄임말이었네요 OTL
    저…. 전 연극이란걸 아직 한번도 못봐서… ^^
    언젠가 꼭 볼꺼에요 ㅡㅡ;; 좋으셧겠다…

    2proo 22 July 2009 at 3:57 pm Permalink
    • 민란을 떠올리셨다니 기발하세요, 하하. 이담에 기회가 되면 꼭 보세요. 첫 작품으로 강추합니다.

      G. Kim 28 July 2009 at 3:56 pm Perma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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