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이름, 눈물나는 이름, 아버지 (극단 골목길 '경숙이, 경숙아버지')

한참 전에 본 연극에 대한 글을 이제야 씁니다. 어찌나 시간이 많이 흘렀던지 그때의 느낌이 어디론가 다 달아나버려서 감상문이라기 보다는 흔적이나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끄적여 봅니다. 마지막 글을 쓴지가 너무 오래 되기도 했구요.
몇년 전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인지 가장 좋아하는 단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mother)’ 라는 단어가 1위로 꼽힌 적이 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머니’가 주는 느낌은 비슷한가 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어떤가요. 어머니만큼 친근한 이름은 아닐지라도 어딘지 마음이 든든해지는 이름이 아닌가요, 그러면서도 안쓰러움이 어리는 이름이 아닌가요.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는 늘 가까이에 있지만 어머니만큼 자주 떠오르지는 않는 ‘아버지’의 모습을 머리 속, 마음 속 깊이 새겨주는 연극이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아버지는 결코 우리 시대의 아버지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전쟁이라는 우리 역사와 혼란스러운 사회와 가정사야 그렇다해도 그 안의 아버지는 결코 흔한 아버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아버지와 가족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아버지라는 이름이 가지는 뭔지 모를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경숙아버지는 친숙한 배우인 조재현이 연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보기에 아주 불편했습니다. 아버지 뿐만이 아니라 연극 자체가 심기를 뒤틀만큼 불편했습니다. 세상에 저런 무책임한 아버지가 어디있냐는 생각에 잠시도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극의 마지막 즈음 경숙이 내뱉은 대사는 그간 불편했던 심기를 한순간에 녹였습니다. 눈 녹은 물이 흐르듯 쉼없이 흐느는 눈물을 감추기에 바쁠 정도였습니다.
아부지, 어딜 그래 갑니까? 아직도 그래 갈데가 많이 남았습니까?
경숙아버지는 비록 가족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경숙이에게 ‘아버지’임은 변함 없었습니다. 떠돌아 다니지만 딸을 마음 속에 품고 다니는 아버지와 그런 아비가 원망스러우면서도 함께 머물로 싶은 딸의 마 음. 좋은 아버지는 되지 못했지만 그도 아버지의 하나이고, 얽히고 설킨 뜨내기들의 모임이지만 그의 가족도 가족의 하나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사랑하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동양과 서양은 ‘아버지’에 대한 뉘앙스가 많이 다릅니다.
가장으로서의 이미지는 같지만 그 분위기가 뭐랄까요,
동양의 아버지는 곧고 딱딱함이라면 서양에서는 친구같은 느낌이랄까요?
이러니저러니해도, 가족에 대한 느낌은 똑같습니다.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아름다운 공동체 아니겠습니까?
블로그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댓글남기는것도 이렇게 하는것인 맞는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극단 골목길에서 제작했던 연극과, 아버지에 관련된 또다른 연극에 관한 저의 감상평에 트랙백을 보내겠습니다.
블로그로 백업할려니까 시간이 많이 걸리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