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표준을 부르짖는 나 이기적이다

19 February 2009 6 Comments Category: 생각의 소리


언제부턴가 웹표준을 준수하지 않는 인터넷 사이트를 배척하고, 특정 플랫폼의 특정 브라우저만 지원하는 공공기관 사이트를 비판해왔다. 액티브엑스를 비난하는 글을 보면 맞장구를 치고, 인터넷 익스플로러(IE) 점유율이 가히 기네스북감인 우리나라 웹환경에 조소를 보내기도 했다. 

근데 내가 누군가? 인터넷을 모자익 브라우저와 넷스케이프로 시작했음에도 이듬해 IE가 나오자 냉큼 갈아탔던 내가 아닌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IE를 쓰면 더 좋을 것 같았고, 이후에는 윈도 안에 IE가 설치되어 있는데 쓸데없이 다른 것을 왜 쓰냐는 생각에 더더욱 IE를 애용했던 나 아닌가. 

이제와서 왜 반 IE를 노래하는가. IE가 그렇게 안좋나? 글쎄, 파이어폭스의 다양한 플러그인 앞에 초라해지는 IE지만 그까짓 플러그인 전혀 관심없는 사람에게 편의기능은 소 귀에 경 읽기이다. 솔직히 난 IE가 더 좋더라. 이유는 없다, 그냥 더 좋더라. 그런데 왜 IE를 쓰라고 하면 경기를 일으키게 되었나? 단순한 이유이다. 내 맥에서는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논리는 웹표준을 부르짖는 것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처음에는 맥과 윈도PC를 같이 쓰다가 맥만 쓰게 된 지 몇년이 되었다. 급하게 뭔가를 해야하는데 IE 전용이거나 액티브엑스를 설치해야 한다면 윈도PC가 있는 어디론가 가야한다. 귀찮다. 화가 난다. 이는 비난의 화살이 되어 웹표준을 지키지 않은 웹마스터에게로 향한다. 나아가 국내 웹환경의 기형성을 성토하는데까지 이어진다. 

이쯤되면 내가 외치는 웹표준은 거시적인 관점이 아니라 ‘나 불편해. 너 이거 고쳐줘’ 정도에 불과하다. 비단 나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웹표준을 요구하는 글을 자주 볼 수 있지만 내용은 나와 다를바가 없다. 내 컴퓨터에 액티브엑스 설치하기 싫은데 왜 설치하냐, 난 파이어폭스 쓰는데 너희 은행 인터넷 뱅킹 왜 안되냐, 카드명세서를 html로 첨부해서 보냈는데 보안파일이어서 내 맥에서는 읽을 수도 없다 등등 개인적인 불편에서 시작해서 불평으로 끝나는 글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오픈웹과 같은 곳에서 왜 웹표준의 당위성과 공공성을 보다 객관적이고 거시적으로 접근해주는 덕에 웹표준에 대한 인식이 차차 개선되고 있기에 다행이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당장 내가 불편하니까 불평하는 것이고, 그런 불평을 한데 모아서 대변하고 변화를 주도하는 오픈웹과 같은 곳이 생겨나면 내 불평이 그들에겐 힘이 될 수도 있겠지. 근데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불평을 듣고 있자면 개중에는 억지스럽게 들리는 것도 없지 않다. 뭐랄까, 걸어가도 되고 버스타고 가도 되는 곳인데 왜 지하철은 안가냐며 개통해달라는 꼴이라고나 할까. 

잠깐,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더라. 아, 이기적인 것. 그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에게 물어본다. 언제부터 그렇게 웹표준에 관심을 가졌나. 관심에도 없던 웹표준, 내 스스로는 지키지 않으면서 내가 이용하고 싶은 사이트가 지키지 않으면 부아가 치밀게 되는 웹표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내’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 전에 ‘내’가 편하던 시절에는 남들이 뭐라고 해도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내가 편한 환경에서는 남들의 불편함을 이해하지 못 한다. 이해를 하기에 앞서서 어떤 불편함이 있을 수 있겠다는 예상조차 할 수가 없다. 왜? 내가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니까.

요즘에는 웬만한 큰 건물이나 공공기관에는 휠체어용 경사로나 리프트가 있다. 아직 한참이나 부족한 환경이지만 이 같은 노력은 오래전부터 있었고, 차차 개선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움직임에 나는 얼마나 관심을 가졌었나. 예전에도, 지금도 눈곱만큼의 노력이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지 않은가. 내가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고,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으니까. 갑작스러운 사고로 거동이 불편해지면 그때부터는 입이 닳도록 시설 개선을 요구하겠지.

어디 장애인용 편의시설 뿐이랴.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소외된 생활을 하며 갖은 불편을 감내하고 있을 것이다. 제도권의 그림자에 속한 누군가는 삶 자체가 고역일 수도 있지 않을까. 

웹표준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공익적인 측면에서 웹접근성을 공평하게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내가 불편한 것만 요구하고 다른 이들의 불편에는 무심한 내가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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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Respon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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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웹 표준을 지키면 얼마나 좋을까요.
    솔직히 전 그것때문에 구글크롬과 익스를 병행이용하고있는데
    너무 불편해요.
    솔직히 크롬이 엄청나게 빠르긴한데
    익스 6는 탭기능이없어서 못쓰고 8는 불안정해서 좀 그러그러해서
    익스7을 쓰는데 요놈은 허구한날 오류내고있네요
    ㅠㅠ

    다쯔, 19 February 2009 at 5:06 pm Permalink
    • 잠시 크롬을 사용해봤는데 속도 하나는 정말 놀랍더군요. 표준만으로 구현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웹표준을 준수해서 이용자가 원하는 도구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랍니다.

      LUV™ 19 February 2009 at 9:24 pm Permalink
  2. 나름 웹 개발자이고 표준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웹표준이고 나발이고 IE는 뭐만 할라치면 브라우저가 뒤져싸서 쓰지를 못하겠어요 =_=;
    그래서 전 왠만하면 기능은 없어도 속도는 빠른 크롬을 쓴다죠..

    ddiamo 20 February 2009 at 9:34 am Permalink
    • 크롬이 액티브엑스 지원하는 한국형 크롬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요. 속도 빠르면서 뱅킹까지 다 되면 욕 하면서 많이 쓸 것 같은데.. ^^;;

      LUV™ 20 February 2009 at 3:54 pm Perma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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