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떠나는 음악여행
중고등학교 시절 매일 밤 붙들고 있던 라디오. 한창 감수성 넘치던 시절이라 그런지 꼭 내 이야기 같은 사연을 들으며 함께 웃고 울던 기억이 난다.
요즘도 적막한 공간을 깨우는 도구로 라디오를 켜두지만 예전과 달리 시사채널을 선택한다. 별밤을 들어도 공감을 할 수 없고,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좋아하시는 방송을 듣기엔 노래가 내 취향이 아니다. 새벽 시간이면 내 또래가 들음직한 방송을 한다지만 솔직히 별로 끌리지는 않더라. 차라리 시사채널 들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것에서 멀어지지 않는 것이 한결 낫다는 생각이다.
시간별로 PD가 다르네
그런데 얼마전부터 시간을 지켜가며 듣는 방송이 생겼다. DJ의 멘트없이 음악만으로는 이루어진 방송인 ‘FM 음악여행‘이다. 대구MBC에서 자체적으로 하는 방송이라서 들을 수 있는 지역은 한정되어 있을 것이다.
FM 음악여행에서는 두시간에 걸쳐 신청곡으로 선곡된 음악이 끊임없이 흐른다. 가수 소개도 없고, 노래 제목도 알려주지 않은채 음악만 틀어준다. 지금 나오는 노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 노래가 끝나면 어떤 노래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음악만 나오는 방송이 처음은 아니다. 아주 오래전 차에서 들은 기억이 난다. 같은 프로그램이었는지, 다른 프로그램이었는지, 다른 방송사였는지, 같은 시간이었는지 어느 것 하나 또렷하지는 않지만 진행자 없이 음악만 나오던 방송이 있었다. 나른한 오후와 저녁 사이의 시간에 잠깐이지만 머리와 마음을 조금 느슨하게 풀 수 있던 시간이었다.
이것이 음악의 즐거움일까.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누군가의 입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다. 한바탕 웃고 배꼽이 빠진대도 어딘가에 집중하는 것은 따뜻한 방에 배를 깔고 뒹굴뒹굴 게으름을 부려보는 것 보다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음악여행의 음악 릴레이는 이런 게으름의 편안함을 준다.
제목도 모르는 노래가 끊임없이 흐른다. 내게는 노래를 고를 선택권도 없다. 나오는대로 뭐가 나올지도 모른채 듣기만 한다. 굳이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어쩌다 아는 노래가 나오면 흥얼흥얼 따라 불러보기도 한다.
‘어! 이 노래 뭐지? 정말 좋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가수는 누구인지, 제목인 뭔지 정말 궁금하다. 행여 노래가 끝날까봐 얼른 가사에 귀를 기울이며 몇소절을 머리 속에 담는다. 집이라면 얼른 검색창에 넣고 찾아보겠지만, 바깥이라면 어딘가에 적어야 한다. 메모지가 있으면 메모지에, 아니면 급한데로 휴대전화나 아이팟에 외운 가사의 일부분을 적는다. 그리고 그 노래의 제목을 알게될 때까지 초조함과 설렘에 마음은 탱탱볼처럼 튀기를 계속한다.
우리 인생이 고달프고 힘든데는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것도 조금 작용할 것이다. 그런 인생이 재미있을 수 있는 것 역시 앞을 알 수 없기 때문이겠지. 예측할 수 없는 무언가가 주는 색다름은 아이팟 셔플이 주는 즐거움을 통해서 자주 느끼고 있지만, 내가 만든 리스트로 채워진 MP3P 내에서 이루어지는 셔플은 한계가 있잖겠는가. 식견이 짧은 나에게 있어서 음악여행의 풍경은 하나하나가 신천지와 같다. 오늘이 어제와 다르고, 내일이 오늘과 또 다르다.
FM 음악여행 홈페이지에는 그날그날의 선곡표가 올라온다. 하지만 잘 찾아보지는 않는다. 선곡표를 보고난 후 방송을 들으면 내용물이 뭔지 다 알고있는 선물을 받는 기분이다. 궁금한 노래를 찾을 때는 유용하기도 한데, 그보다는 가사를 몇번이고 되뇌면서 어딘가에 적어놓았다가 찾는게 훨씬 재미있다. 소풍가서 하는 보물찾기라고나 할까.
30곡 가까운 음악과 떠나는 두시간의 여행. 어느새 음악여행 2부가 끝나가는 시간이다. 지금 나오는 YB 노래가 끝나고, 2부 마지막 곡은 누구의 노래가 될까. 남은 여행에 내가 그리워하는 그 곳도 있기를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