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국제오페라축제 폐막작 'Il Trovatore' 후기

01 October 2006 16 Comments Category: 공연문화 → art


창작오페라 ‘불의 혼’으로 개막된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베르디 오페라 ‘일 트로바로레’를 마지막으로 한달여간의 뜨거운 열기를 마무리했습니다. 무대의 그 열기는 내년 축제가 열릴때까지 식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오페라는 나의 적’이라는 인식이 콱 박혀있었는데 두번째 관람에서 그 생각이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내년 오페라축제가 기다려집니다.

‘일 트로바토레’는 ‘대장간의 합창’이라는 유명한 곡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대장장이의 망치소리가 경쾌하면서도, 웅장함이 느껴지는 합창곡이지요. 오페라에 전혀 관심이 없던 제가 10여년 전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이 곡을 듣고 당장 오페라 합창곡 모음 테이프를 살 정도였다면 얼마나 인상적인 곡인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고전음악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그때부터네요. 비록 선생님의 성함은 잊어버렸지만 처음으로 고전음악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해주신 선생님으로 영원히 기억되실 듯 합니다.

1막 1장, 2장이 이어지는 동안 ‘이번에는 즐겁게 내용도 이해해가며 감상해야지’하는 작은 부담도 있었는데 ‘대장간의 합창’과 함께 2막 1장이 시작되자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옛날 음악시간이 떠오르기도 하고, 익숙한 곡을 어렵게만 느껴지던 오페라 무대에서 듣고 있다는 사실이 분위기를 한결 편안하게 만들어주더군요. 음악에 맞춰 망치질 연기를 하는 배우의 모습에서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레오노라와 루나 백작의 이중창이 귓가에 맴돕니다. 사랑하는 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정조를 루나 백작에게 바치겠다고 약조하지만 그가 얻는 것은 독약을 마시고 죽은 싸늘한 자신의 시체일 것이라 노래하는 레오노라, 사랑하는 여자를 드디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희열을 노래하는 루나 백작. 둘의 이중창은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지만 둘의 속마음은 전혀 다릅니다. 이 부분이 작품의 하일라이트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게는 참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또하나 화가 나면서도 가슴이 뭉클했던 장면은 레오노라가 루나 백작에게 정조를 바치고 자신을 구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만리코가 ‘나를 구하기 위해 나의 사랑을 팔았구나’라며 원통함을 노래하는 장면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만리코를 구한 레오노라인데 그녀가 왜 ‘사랑을 판 몹쓸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레오노라가 불쌍하고 만리코가 원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 만리코의 마음이 조금씩 이해되었습니다. 그가 화를 낸 것은 자신의 사랑을 팔아버려서가 아니라 사랑을 잃고 혼자 살아남는 것에 대한 절망감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지켜주지 못하고 오히려 나를 위해 희생하는 그녀를 보는 것이 너무나 괴롭지 않았을까요. 그녀없이 혼자 살아있는 것은 크나큰 고통이 될 것이라는 것이 두렵지 않았을까요.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이 어떤 것이든지간에 둘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절로 눈물이 맺힌다는 것입니다.

‘오페라는 인간의 지혜가 만들어 낸 최고의 오락’이라는 스탕달의 말을 오늘은 조금 공감합니다.

오페라 문외한인 저의 첫 관람이었던 ‘나비부인’에 대한 온갖 부정적인 느낌들은 결국 ‘아는 만큼 즐겁다’는 아주 기본적인 상식으로 설명이 되었습니다. 내용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맨 앞줄에 앉았으니 머리 위에 있는 자막은 보이지도 않고, 코 앞에 위치한 오케스트라의 합주는 배우의 목소리를 잠재워버리기 일쑤인데 재미있을리가 있나요. 오늘 ‘일 트로바토레’를 관람하며 드는 생각은 ‘나비부인’을 다시 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극중에서 만리코가 루나 백작의 동생으로 밝혀지는데 실물은 만리코가 형으로 보이더군요. 우스웠습니다. 수녀원 장면에서 계단 내려오다 삐끗하신 분!! 전 봤습니다, 하하하. 사실은 넘어지실까봐 걱정했어요.

마지막으로 드라마 주몽 제작진에 한마디. 어떻게 드라마 전투씬이 오페라 무대에서 벌어지는 전투씬 보다 스케일이 작을 수 있나요. 한나라, 백제 군사보다 더 많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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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Respon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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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페라…저랑은 많이 거리가 먼 애기로군요..- _-

    얼리어답터 1 October 2006 at 11:48 pm Permalink
    • 짐작과 달리 학생관객도 많았습니다. 난 중학교, 고등학교때 뭘했나 싶던걸요^^ 기회가 되면 보러 가세요. 한번두번 보다보니 재미가 생깁니다.

      luv4™ 2 October 2006 at 2:47 pm Permalink
  2. 저는 대학원때 오페라를 많이 보았습니다. 학생 할인 혜택이 훌륭했었거든요. 한 시즌에 9개 오페라를 했었는데, 그중 5개를 보는 것이 (그것중 1개는 주말 티켓으로) $90 정도 했으니 훌륭했죠. 좌석도 R석이었구요. 물론 10몇년 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요.

    Kevin 3 October 2006 at 11:07 am Permalink
    • $90에 5개의 오페라를 볼 수 있었다니.. 게다가 R석이라니 한편 보기도 힘든 비용으로 다섯편을! 이번에 제가 본 공연은 루마니아팀이었는데 티켓이 굉장히 저렴했습니다. 오페라축제 작품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국내 오페라 반값 정도였거든요. 그래서 큰 부담없이 봤는데 이번에는 꽤 재밌게 보았습니다^^

      luv4™ 3 October 2006 at 11:37 am Permalink
  3. 그때 Tosca, La Boheme, La Forza del Destino, Aida, La Traviata 등 많은 이탈리안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외에도 Carmen, Le Nozze di Figaro 등을 보았었구요. 제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La Boheme이네요. 현대 뮤지컬과 흡사하게 짧고 강렬한 아리아 위주로 되어 있으며, 스토리를 빠르게 전개하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습니다. 또 제가 본 프로덕션은 눈내리는 거리 등 무대장치를 잘 사용했기 때문에 제가 Puccini의 오페라를 보는지 Les Miserables같은 현대 뮤지컬을 보는지 잘 모를정도로 만들었었지요.

    Kevin 3 October 2006 at 11:14 am Permalink
    • 그동안 뮤지컬이나 연극은 간간이 봤는데 오페라는 이번이 두번째였습니다. 어렵고 고급문화라는 인식이 강해서 선뜻 관람하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막상 가보니 표가 비싼 것 말고는 그럭저럭 대중문화(?)라고 해도 되겠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라 보엠.. 제목이 익숙한 것과 달리 배경지식은 전무합니다. 하지만 케빈님 말씀을 듣고나니 꼭 보고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다, 라 트라비아타도 보고싶은 작품이구요.

      luv4™ 3 October 2006 at 11:41 am Permalink
  4. Verdi나 Puccini등 이탈리아 오페라 중 잘 알려져있는 것은 뮤지컬과 흡사한 준 대중문화라고 보셔도 괜찮습니다. 오페라라는 것이 꼭 턱시도를 입고 뽀대내면서 가는 것은 아니거든요. (개봉일만 좀 그렇습니다.. 제가 오페라를 자주 보았을때, 개봉일 가격은 다른 날짜의 2배이더군요)

    대신 저는 Wagner의 오페라 등은 권하지 않습니다. 이탈리안 오페라가 아리아 위주라면 바그너 오페라들은 대화위주 (그것도 음악으로 하지요) 고 너무 쓸때없이 길다고 느꼈습니다. 직접 보지는 않고, TV에서 링 사이클 전체를 보았는데 (거의 20시간이죠 ㅠㅠ)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어떤 분이 말씀하셨듯이 “바그너의 오페라를 볼때 30분 기다려서 3분의 천재성을 느낀다” —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Kevin 3 October 2006 at 1:33 pm Permalink
    • 일 트로바토레도 같은 범주에 넣을 수 있을까요.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꽤 재밌었거든요.^^ 바그너의 오페라는 내공이 한참 쌓인 뒤에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지금은 “바그너의 오페라를 볼때 30분 기다려서 3분의 천재성을 느낀다” 이 말 자체도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하하.

      luv4™ 3 October 2006 at 9:52 pm Permalink
  5. 네 1편씩 구매하면 R석이 $75인데, half-season 티켓 (9개 오페라중 5개 보는것)을 사면 $200 정도 했었거든요. 이것을 학생 할인으로 사면 $90에 볼수 있었지요. 그래서 대학원 마치고도 대학원에 아직도 다니던 친구들을 통해서 학생용 티켓들을 구입해서 보았습니다. 그렇게 3년쯤 보았죠. 15편을 보았군요 ^^

    Kevin 3 October 2006 at 1:35 pm Permalink
    • 한편 보는 값이랑 학생 할인으로 다섯편을 보는 값이랑 비슷하다니 놀라울 뿐입니다. Kevin님께서 그 많은 작품을 보셨다는 것은 단지 저렴한 티켓 가격 때문만은 아니겠죠. 관심과 부지런함이 없다면 힘드니까요.

      luv4™ 3 October 2006 at 9:54 pm Permalink
  6. 아이다, 라보엠, 라트라비아타 모두 주옥같은 이탈리안 오페라이지요. 모두 추천합니다. 미스 사이공 (뮤지컬) 이 “나비부인”을 베트남으로 옮겨서 약간의 “라트라비아타”를 섞은 것이라고는 아시지요?

    Kevin 3 October 2006 at 1:37 pm Permalink
    • 오페라를 원작으로 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게 나비부인와 라 트라비아타였군요. 미스 사이공은 아직 못 봤습니다. 기회도 없었구요. 그 전에 ‘나비부인’을 다시 한번 보고 싶습니다. 이번엔 제대로요..^^

      luv4™ 3 October 2006 at 9:56 pm Permalink
  7. Il Trovatore도 역시 Verdi이니까, 접근하기가 좋은 오페라입니다. 생각해보니까, 2001-2004년 동안 본것 같기는 한데, 좀 가물가물하네요.

    바그너의 오페라는 오케스트라 부분이 좋습니다만, 제게는 노래들은 잘 남지를 않았습니다. 오케스트라 모음집으로 듣는 것이 더 효율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프라노도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좋아하는 벨칸토 창법을 쓰는 소프라노보다 (듣기좋은 꾀꼬리 소리같은 것이죠) 우렁찬 목소리를 내는 소프라노 (여장부.. 라고 생각하시면되죠) 를 요구하고, 등등 해서 많이 틀립니다.

    대학원시절에 주로 클래식 음악을 들었기 때문에 오페라에 심취했던 것 같습니다. 또 샌프란시스코의 오페라단이 미국에서는 아마도 뉴욕과 시카고 다음으로 괜찮은 오페라단이라는 것도 도움이 되구요. 샌프란시스코의 오페라하우스도 인상깊은 곳입니다. 혹시 Julia Roberts가 나오는 Pretty Woman라는 영화 기억나시는지요? 그곳이 샌프란시스코 오페라하우스입니다. La Traviata를 공연하고 있었지요.

    Kevin 3 October 2006 at 10:11 pm Permalink
    • 박학다식하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맥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아시던데 문화계까지 다 꿰고 계시네요^^ 본받겠습니다~~

      luv4™ 8 October 2006 at 11:18 am Permalink
  8. 안녕하세요~ 일 트로바토레 보고 더 알아보고 싶어서 검색하다 들렸습니다. 제 까칠한(..) 감상과 달리 따뜻하게 감상하시는 것 같아 놀랍고, 부러웠어요.^^*
    실례되겠지만- 자주 스토킹 하겠습니다!!

    지마 23 November 2006 at 7:57 am Permalink
    • 어느정도 해박함을 갖추고 있어야 비평도 가능한거 아니겠습니까^^ 전 그저 다 좋습니다. 하하~~. 저보다 잘하면 일단 다 합격인걸요. 저도 까칠한 비평을 할 수 있을만큼 실력있는 관객이 되고 싶습니다.

      luv4™ 26 November 2006 at 10:27 am Perma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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