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속의 특별한 혼자놀기

25 December 2008 5 Comments Category: 공연문화 → art


혼자서만 놀 줄 아는 사람과 혼자서도 놀 줄 아는 사람은 한 글자 차이일 뿐일까. 혼자서만 놀 줄 아는 사람은 혼자서 얼마나 잘 놀 수 있을까. 혼자 노는 것은 물리적인 격리 안에서만 되는 것일까, 함께 혼자 놀기도 되는 것일까.

‘혼자놀기’라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잘난척 하고 친구없는 그 녀석? 언제나 혼자 다니는 조용한 그 녀석? 모두가 싫어하는 왕따? 나는 나 자신을 떠올렸다. 내가 앞에 열거한 녀석들 중의 한명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혼자노는 것이 좋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혼자놀기가 좋다.

식당에서 메뉴를 통일하자는 내키지 않는 요구에 굴복할 필요도 없고, 밥 먹는 속도를 맞추느라 숨 쉴 틈 없이 밥을 꾸역꾸역 집어 넣어야 하는 고통도 겪지 않아도 된다. 길을 가다가 여느날과 달리 따사로운 햇살과 파란 하늘이 예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기분을 즐겨도 뭐라는 사람이 없어서 좋다. 걷고 싶은 날은 한 정거장 전에 혹은 지나쳐서 내릴 수 있어서 좋다. 

혼자놀기에는 이러한 사소한 즐거움 보다도 더 큰 의미가 있다. 혼자가 되고 싶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수많은 의미 가운데 내가 아는 한가지는, 적어도 내게 있어 가장 의미있는 한가지는 ‘탈피’이다. 네가 아는 나, 사람들이 말하는 나,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혼자놀기‘라는 책이 있다. 

무슨 책 같은가. 혼자서 뭘 하고 놀면 재미있을지, 어디에 가면 맛있는 집이 있는지, 혼자 가볼 만한 여행지는 어디인지에 대해서 쓴 책일까? 아니면 혼자놀기라는 단순함에서 시작해서 온갖 이론과 고찰을 덧붙여 가며 철학적인 억지 결론을 이끌어내는 책일까? 혹시 이도저도 아닌 어느 작가의 신변잡기에 불과한 책은 아닐까. 

책 뒷면에 인쇄된 추천 문구를 보면 ‘자기치유’, ‘창의적 실험’, ‘미덕’ 등과 같은 용어를 써가며 극찬을 해놨다. 어느 책이 그 자리에서 자아비판을 하겠는가? ’어설픈 싸이월드식 자기계발서‘라는 혹평을 내리는 블로거도 있으니 책 추천문구만 보고 덜컥 구입하는 경솔함을 경계해야 한다. 

싸이월드식 자기계발서? 그것도 어설픈 싸이월드.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커피전문점 가서 음식 앞에 모셔놓고 사진찍어 올리는 싸이월드 아니던가. 일촌평 많은게 무슨 벼슬인지 일촌평 남겨달라고 조르는 싸이월드 아니던가. 그런데 제대로 된 것도 아니고 어설픈 싸이월드라니. 제대로 크게 한방 먹였다. 

허나, 이 책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혹시 그렇게 분류되어 있고, 작가와 출판사도 그런 의도로 책을 낸 것이라면 어설픈 싸이월드식 이라는 욕을 먹어도 싸다. 적어도 난 ‘혼자놀기’에서 계발적인 무언가를 얻을 생각이 없었다. 난 그저 궁금했을 뿐이다. 작가인 강미영은 도대체 혼자서 뭘 하고 놀까. 그 놀이에서 어떤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 작가가 혹시라도 혼자놀기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내가 내리는 의미와 어디가 닮았고 어디가 다를지 그게 궁금했다. 

이 책은 혼자노는 법을 가르쳐 주는 책 같지도 않다. 작가가 혼자서 뭘하고 노는지는 아주 상세하게 쓰여져 있지만 혼자놀기 설명서 처럼 이럴땐 뭘 하고 놀면 재미있다고 알려주지 않는다. 혼자서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것을 좋아하고, 가서 뭘 한다고 알려주고, 어느 자리가 좋은지 알려주지만 혼자서 가도 좋을 좋은 커피숍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대신 작가의 혼자놀기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남의 일상이, 그리고 거기에서 자유를 찾고 혼자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들이 남의 미니홈피 구경하는 기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싸이월드식 사진도 곁들여져 있으니 딱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책을 매일 가방 한켠에 끼고 다닌다. ‘혼자놀기’는 제목 그대로 혼자놀기에 적당하기 때문이다. 함께 노는 것이 즐겁고 혼자 노는 것에 대해 따로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혼자놀기에 도전하려 한다면 이는 도전이지 절대 놀기는 될 수 없을 것이다. 반면 늘 혼자 노는 내게 있어 이 책은 흥미 진진한 소설 보다도 더 재미있다. 집중해서 읽지 않아도 되고, 산책을 하다가 잠시 앉아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된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고 거기서 무엇을 얻으려 머리를 쥐어짜지 않아도 된다. 혼자 놀 때 혼자 읽을거리가 되면 충분한 것 아니겠는가. 숨을 쉬며 공기가 드나들 듯 알게 모르게 혼자놀기는 혼자놀기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또 하나의 책이 있었다. 작은탐닉의 탐닉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나는 소소한 일상에 탐닉한다’는 말 그대로 일상을 담은 책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 안에서 아기자기한 즐거움을 찾아내는 책이라고 할까. 다른 점이 있다면 혼자놀기는 그 일상의 대상이 혼자놀기로 좀 더 좁혀져 있다는 것 정도. 

혼자놀기에 익숙하고, 혼자놀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분명한 입장이라 그런지 책에서 공감을 할 수 있는 구절이 꽤 많았다. 그 중 하나는 탈출에 대한 것이다.

혼자놀기를 꿈꾸지만 늘 같은 크기로 사람을 그리워했다. 혼자 여행을 하다보면 누군가 말을 걸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했는데 그곳에서도 나는 관계를 꿈꾸었다. …… 내가 원하는 건 고립이 아니라 낯선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낯선 내 모습을 꿈꾸는 것이다

결국 작가는 내 친구들이 알고 있는 나의 모습으로부터 단절되고 싶었던 것이다. 화를 내는 나의 모습에 ‘너 답지 않게 왜그래’라는 말이 기름이 되어 퍼부어진 적은 없는가. 언제부턴가 나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남들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는가. 

혼자놀기의 작가는 여자의 몸으로 혼자서 여관에도 자주 간단다. 작가는 말한다. 3만원이면 내게 자유가 주어진다고. 이불을 개지 않아도 되고,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되고, 팬티 하나만 입고 화장실에 갈 수도 있다. 그러고보니 여관이라는 곳이 청춘남녀나 불륜의 중년들이 은밀한 사랑을 나누는 곳 만은 아니구나. 남들의 이목, 고정관념, 이런 것들을 조금만 돌려세울 수 있다면 그동안 알지 못하게 지내던 새로운 작은 세계가 나를 반겨줄 수 있겠구나. 

혼자서 한번 놀아볼까 하는 사람에게는 별 도움이 안될 수 있다. 이미 혼자서 놀고 있는 사람에게 권해본다. 혹시 그렇게 같은 방식으로 놀면서도 놓치고 있는 것이 있을지 모른다. 나는 이 책에서 레몬의 상큼함을 발견했다. 

강미영 작가 블로그
- http://demb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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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Respon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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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와우~조곤조곤하게 이쁘게 쓰신 글 잘 읽어보았어요~
    저와 비슷한 느낌을 받으셨군요.^^
    저도 맛깔나게 읽으면서 가끔씩 가방 속에 넣고 댕기면서 조용히 가볍게 읽고 싶은 책이더라구요.
    트랙백 걸어주셔서 감사~저도 걸고 가요. 반가워요~

    코코리짱 25 December 2008 at 11:33 pm Permalink
    • 책에 대한 느낌이라는 것이 주관적이다 보니 취향에서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분을 만나니 반갑네요.

      LUV™ 27 December 2008 at 1:44 pm Permalink
  2. ^^ [어설픈] 싸이월드식 자기계발서라는 서평을 레이니돌님이 올린 그날 봤습니다. ;;;
    솔직히 처음엔 적지 않게 상처가 되더군요. ;;;;; 저는 소심한 초보 저자니까요. ㅎㅎㅎ

    하지만 이제는 조금은 다른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책을 어떻게 읽는지 어떤 부분을 받아들이는지는 독자의 몫인것 같아요.
    물론, 책을 고르는 것 또한 독자의 능력이구요.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서평단이나 누군가에게 강제로(!) 책을 읽히고 서평을 쓰는것은 절대 반대하는 입장입니다만, 출판사에서는 또 그게 아닌가 보더라구요.

    어쨌튼, 누군가를 계몽하겠다거나 삶에 큰 변화를 주려고 쓴 글이 아니라는걸 알아차려 주시고 제 이야기에 무릎치며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래서, 힘 내려구요! ^^ 화이팅!

    LUV4US님의 화이팅에 감사하며. ^^

    dembyo 27 December 2008 at 8:27 pm Permalink
    • 반갑습니다. 블로그로 찾아뵙지요~ ^^

      LUV™ 27 December 2008 at 10:31 pm Perma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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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ternal Sabbath | December 25th, 2008, 11:3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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