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작은 합창 '행복한 작은 학교'

05 February 2009 7 Comments Category: 공연문화 → art


학교 수업을 마치면 교실이나 운동장 한쪽에 가방을 팽개쳐 놓고 뛰어놀던 시절이 있었다. 뭐가 그리도 재미있었는지 정글짐을 오르내리고, 미끄럼틀을 타고, 운동장에 금을 그어놓고 술래놀이를 하면 어느새 어둑어둑 저녁이 찾아왔다. 

지금도 한번씩 초등학교 옆을 지나면서 교문 사이로 운동장을 힐끔 바라보면 아이들이 축구도 하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뭔가를 하며 노는 모습이 눈에 띈다. 하지만 어릴적 그 풍경과는 다르게 왠지 모를 낯설음이 느껴진다. 친구들과 운동장을 뛰어다니지 않아도 하고 놀 것들이 많아서일까. 학교는, 그리고 운동장은 그전만큼 신나는 놀이터가 아닌 듯 하다.

학교. 학교가는 길이 신나는 길이었는가.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학교에 대한 느낌’에 대해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그중 행복한 곳이라는, 재미있는 곳이라는 답을 주는 학생이 몇이나 있을까. ‘옛날엔 좋았어요’라는 회상은 들을 수 있을지언정 ‘행복한 학교’에 대해 듣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학교는 이미 경쟁을 가르치는 곳이 되었으니까. 

그런데 ‘행복한 작은 학교’가 있다. 

행복한 작은 학교
365일간의 기록

8점
이길로 지음/글담출판사

경상북도 상주에 위치한 남부초등학교. 대안학교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엄연한 공립학교이다. 공부가 우선이고 순위를 매기는게 중요한 학교에서 어떻게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한적한 시골 학교라서 가능한 것이라고 단정하기엔 우리 사회의 학벌지상주의와 입시경쟁이 너무도 만연해 있지 않은가. 이 책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는 있지 않을까.

책의 표지부터 속지 하나하나, 마지막 페이지까지 아이들의 햇빛 웃음이 가득하다. 과연 학교가는 길이 이 아이들에게는 행복임을 단언케 한다. 한때 폐교의 위기에 몰리기도 했던 작은 학교는 이제 교육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 하나를 제시하고 있다. 아이들이 가고 싶은 학교, 학교가는 길이 즐거운 학교. 

글담출판사에서 펴낸 ‘행복한 작은 학교 365일간의 기록’은 MBC 이길로 PD와 황석문 촬영감독의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옮긴 것이다. 이들의 다큐멘터리는 MBC 노동조합 선정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어린이 청소년 TV 부분 작품상’을 수상하며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내기도 했다. 

 

 

비록 방송을 보지는 못했지만 책을 보면서도 남부초등학교의 아이들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지는 듯 했다. 아이들의 밝은 모습이 사진으로 실려있어서 그런지 하나하나가 그렇게 친근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그러면서 어느새 나는 10살 그때로 회귀하고 있었다. 

눈물.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지난 시절에 대한 회상 때문일까. 각박한 현실에서 이런 학교가 있다는 것에 대한 안도일까, 선생님들에 대한 고마움일까. 

우리 교육 문제를 비판하며, 갈 길을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책이 아니라 상주 남부초등학교 아이들의 일상을 일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담아내고 있다. 입학하는 날부터 졸업하는 날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의 소소한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소소하지만 여기에는 아주 특별함이 있다. 학교를 마치고 영어 학원에 가고 다시 피아노를 치러가고 또 다른 학원을 거쳐 하늘이 깜깜해진 후에야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특별한 일상이 있다. 

그리고 이 특별한 일상 뒤에는 진정한 교육을 실천하려 노력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대회 앞두고 연습 막 시키잖아요? 그럼 애들이 악바리 근성이 생긴다고. 꼭 이겨야지 하는 악바리 근성. 이것이 좋을 때도 있지만 괜한 경쟁심만 불러일으켜. (중략) 늘 그렇지만 우리는 나가고 싶어하는 아이들만 데리고 나가요. 자기가 정말 달리고 싶은 아이들.

 

달리는 것이 좋아 달린 아이들이 육상대회에서 1위와 2위를 했다. 물론 나머지 아이들은 사이좋게 예선에서 탈락이다. 아쉬움이 왜 없을까마는 이 아이들에게 대회는 경쟁이 아니라 즐거운 경험이다. 거기에 덤으로 상을 받게되면 자장면과 탕수육을 먹을 수 있는 신나는 이벤트이기도 하다. 

TV 화면에 똘망똘망한 눈으로 퀴즈를 척척 풀어내는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을 보면 한숨이 먼저 나온다. 수능 시험을 치고 입시 결과가 나오면 학교 곳곳에 ‘OO 대학교 합격’ 이라는 현수막이 걸리는 것을 보며 씁쓸함을 삼킨다. 한때 현수막에 이름 걸었던 날 보라고 하고싶다. 지금 내 꼴을 보라고. 

1등을 너무 좋아한다. 운동에서도 공부에서도 뭘 하건 1등을 하라고 종용한다. 묻고 싶다. 그때의 각종 1등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수능 전국 수석의 주인공들은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난 모르겠다. 아직도 1등을 하고 있을까. 

 

 

그래서인지 이 행복한 학교 아이들의 개구장이 같은 모습과 함박 웃음이 마음을 찌릿하게 한다. 학교는 공부만 잘하는 사람을 만드는 곳이 아니지 않은가. 

학교를 다니면서 선생님이 손을 꼬옥 쥐어주셨던 기억이 있나. 있었을법 한데 금방 떠오르진 않는다.

잘했다며 머리 쓰다듬어 주신 기억은 나는데 내가 속상할 때, 혹은 선생님께 야단을 맞아 어깨가 들썩이도록 울음을 참을 때 따끔한 야단 후에 따스히 손을 쥐어주신 분은 없었나보다. 때론 매와 말 보다도 더 큰 의미를 전하는 그 손길을 한번쯤 느껴보았더라면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한분 생기지 않았을까. 

현실과 너무도 다른 이 학교의 모습을 보며 답답함을 느끼는 선생님이나 부모님들도 있을거다. 누가 좋은지 몰라서 안하나,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것이지. 그래. 남부초등학교가 행복한 학교가 될 수 있었던데는 선생님들의 마음이 통했고, 아이들이 많지 않았고, 주위 환경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모든 학교가 그대로 따라할 수는 없겠지. 그게 안타까울 뿐이고.

하지만 다행이지 않은가.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행복한 학교가 있다는 것이. 

상주면 고향 부모님 댁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넉넉잡아 두시간이면 학교까지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실습 마치는대로 방학이 끝나기 전에 아이들의 웃음이 남아 메아리 칠지도 모르는 운동장을 한번 걸어보고 싶다. 혹시 알아? 책에서 본 그 녀석을 만날 수 있을지. 

 

Share and Enjoy:
  • Digg
  • del.icio.us
  • Facebook
  • Google Bookmarks
  • email
  • RSS
  • StumbleUpon
  • Tumblr
  • Twitter
  • Live
  • MySpace
  • Technorati


Possibly Related Posts:



7 Responses

Write a comment
  1. 잔잔한 음악과 함께 들으니까 책을 읽고 느꼈던 감정들이 다시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성적보다, 순위보다, 경쟁보다 더욱 중요한 요소들이 살의 구비구비 너무 많다는 사실을 배워간다는 것만으로도 작은학교의 아이들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각박한 우리 교육현실에 저런 학교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꿈같은 기대도 해봅니다.

    비트손 7 February 2009 at 11:57 pm Permalink
    •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서로가 공감하는 것 한가지가 있습니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게 큰 재산이라는 것. 작은 학교와 뒷산과 앞들과 강이 어린 시절을 훨씬 풍요롭게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LUV™ 10 February 2009 at 11:32 am Permalink
  2. 음악과 함께 읽으니 작은 학교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방송은 보지 못했는데말이죠.. ^^

    해피 12 February 2009 at 11:06 am Permalink
    • 저도 방송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책을 읽으며 ‘방송에서는 이렇지 않았을까’하는 상상을 하게 되더군요. 재방송 계획이 없는지 궁금하네요.

      LUV™ 13 February 2009 at 1:06 pm Permalink

Trackbacks / Pingbacks

  1. terra's me2DAY | February 6th, 2009, 1:59 pm
  2. MIND LOG | February 7th, 2009, 11:54 pm
  3. 일다의 블로그 소통 | March 26th, 2009, 2:54 pm

Write a Comment

Commenter Grava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