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윅(HEDWIG)과의 첫만남
뮤지컬 헤드윅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작품이다. 오래전부터 TV를 통해서 몇번 접하긴 했지만 단 한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켜본 적이 없다. 뭔가 어색하고 불편해서 계속 지켜볼 수가 없었다. 트랜스젠더라는 인물적 특성 때문일까, 아니면 낯선 문화적 내용 때문일까? 글쎄.. 그런거라면 ‘록키 호러 픽처 쇼’ 도 끝까지 보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건 푹 빠져서 보지 않았던가.
비록 작은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지만, 보다가 몇 번을 포기한 작품이다보니 초대권을 받아들고도 조금은 망설여졌다. TV는 끄면 그만이지만 극장에서 도중에 나올 정도의 뻔뻔함은 없으니까. 하지만 화면으로 보는 피겨스케이팅이 링크에서 직접 보는 것과 달리 밋밋한 것처럼 무대 앞에서 직접 보는 헤드윅은 분명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극장으로 향했다.
무대가 참 단촐하다. 그러나 절대 단조롭지 않다. 공연을 보는 내내 무대장치, 특히 조명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연극 바리데기에서 천과 같은 평범한 소품으로 다양한 무대를 연출하던 상상력에 놀란 적이 있는데, 헤드윅에서는 조명에 상상력을 달았다. 특히 대형 환풍기 사이로 쏟아지는 빛을 표현한 부분에서는 음악과 조명 그 어느 것 하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더라.
음악. 그래, 난 뮤지컬이라는 장르만 생각하면서 갔는데 뮤지컬이라기 보다는 콘서트에 가깝다. 한번도 가수의 콘서트에 가본 적이 없지만 들리는 얘기로 짐작해보기엔 그럴 것 같다. 노래만 하는게 아니라 중간중간 대화도 하면서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꾸며나가는 것 같던데. 헤드윅도 그렇다. 헤드윅과 앵그리 인치 밴드의 콘서트에서 헤드윅이 자신이 살아온 길을 이야기 해주는 것 같은 구조.
재미있었어? 글쎄, 솔직히 말하면 다음에 또 보러 갈지는 잘 모르겠다.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처럼 지방공연을 할 때마다 꼭꼭 챙겨보는 작품 목록에 올릴 생각은 없다. 작품이 별로여서가 아니라 내 취향이 아니어서. 그다지 동적이지 않은 내가 락콘서트장에 서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손이 오그라드는데 헤드윅이 100% 즐거울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럼 별로였어? 그렇다고 재미없는 것은 아니었어. 소심한 내가 머리 위로 팔을 뻗고, 비록 작은 동동거림에 불과했지만 발을 구르기도 했으니까. 아니, 어쩌면 이런 분위기가 나의 재미를 반감시켰을 수도 있다. 그냥 나 혼자 생각하며 즐기게 내버려뒀다면 더 재미있었을텐데..
이번 공연은 이주광이 헤드윅 역을, 전혜선이 이츠학 역을 연기했다. 이주광. 400:1의 경쟁 뚫고 헤드윅이 된 대단한 분이다. 아마 헤드윅에 대한 정보를 미리 찾아보고 갔더라면 이주광이 아닌 송용진의 헤드윅을 보았을 것이다. 인터넷에 올라있는 송용진에 대한 극찬과 공연 후 이어지는 커튼콜 공연은 헤드윅 본작품을 능가하는 멋진 무대, 열정적인 광란의 무대 그 자체더라. 물론 내가 이런 분위기를 즐기지 못하는게 문제긴 하지만..
하지만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극장을 찾았기에 이주광의 헤드윅을 만날 수 있었고, 그 만의 매력을 맛볼 수 있었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 아닐까. 혹시 앞으로 다시 공연을 볼 기회가 생긴다면 이주광과 송용진을 두고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되겠지.
그리고 또 한명의 멋진 가수, 전혜선. 이츠학 역의 전혜선은 이주광에 이어 또 한번 전신을 타고 흐르는 전율을 선사했다. 음치에 가까운 내가 평가를 하기란 참 우습지만, 노래에 있어서 헤드윅 보다도 훨씬 더 돋보이더라. 강함과 부드러움을 모두 겸비한 목소리에 실려서 전해지는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 때의 소름이란..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사진: 뮤지컬 헤드윅 공연 후 (이주광 미니홈피)
뮤지컬 헤드윅. 뮤지컬과 콘서트 두가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다. 실제로 뮤지컬이 끝나고 다시 펼쳐지는 공연은 노래 한두 곡으로 끝나는 의례적인 앵콜이 아니다. 본 공연 못지않은, 아니 어쩌면 그 이상 폭발적인 무대를 선사한다. 공연 후 공연 때문에 일부러 송용진을 찾는 사람도 많을 정도로 송용진의 무대가 화끈하다고 한다. 이주광은 아직은 거기에 미치지 못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공연을 처음 보는 나를 흥분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아아.. 나도 노래 잘 하고 싶다. 멋지게 감동적인 노래로 프러포즈 하고 싶은 바람. 잉? 결론이…

